최 대표는 “올해 출시가 예정된 주식회사 준성의 신규 브랜드를 바탕으로 국내에 몇 안 되는 100년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싶습니다”라며 “충분한 자본과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대표자인 제가 모든 권한을 갖기보다는 그동안 함께 고생해온 동료들과 그 권한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아가 대표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 시스템을 만들고, 시니어와 주니어가 어우러질 수 있는 ‘도제(徒弟) 시스템’을 만들어 신·구의 조합으로 보다 오래갈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선율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처럼 실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나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한 단계 더 도약할 2021년의 준성을 주목해주길 바랍니다”라고 피력했다.
창업 동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막연히 대통령을 꿈꿔왔었다. 꿈에 비해 철없이 행동하기도 했었고, 시간을 허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유흥업소의 조명 기사로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주어진 일을 수행하고 급여를 받는 활동을 말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어느 날 아버지의 호통에 뒤를 잠시 돌아보게 됐다. 유흥업소의 특성상 밤에 일하는 형태다 보니 내 생활은 이미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뒤늦게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고자 음향 기업에 입사했다. 그곳에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팀의 소중함도 깨닫게 됐다. 팀원들과 함께 협동해 이뤄내는 결실, 그리고 성취감을 말이다. 하지만 20대 후반까지 현장 기사로 일을 해오며 그 이상의 비전을 찾지 못했다. 마침 그 시기에 회사에서 큰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회사에서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을 모고 많은 실망을 했고, 직원의 미래에 대해 배려하지 않던 모습에서 더 큰 실망을 하게 됐다. 그저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직장을 옮겼고, 그곳에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좌절도 맛보게 됐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노력’이란 것을 했다. 내 인생에서 후회가 없을 정도로. 그 과정에서 옮긴 회사의 성공과 위기를 가까이서 보게 됐고,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과 약속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고객과의 약속, 그리고 팀원들과의 약속에 책임을 지고자 창업이라는 길을 택하게 됐다”
철저한 준비 뒤의 창업이 아니기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전 직장이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6개월 정도 급여를 받지 못했었고, 자본에 대한 기틀 없이는 어떠한 일(공사)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믿고 함께 와준 동료들이 있었고, 그 동료들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게 당시 가장 큰 가치이자 원동력이었고, 지금도 이는 변함이 없다.
창업한 뒤 지난 10년간 단 1번, 급여가 일주일 늦어진 적이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직원들이 실망할까 두려웠다. 그동안 내가 내뱉었던 꿈과 희망의 말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될까 무서웠다. 하지만 서로 간의 믿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끈끈한 의리와 성공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빠르게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에 보답하고자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지만, 현실이 녹녹지 않아 항상 미안하다. 상여금과 성과급으로 이를 표현하고자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다”